조회 수 9 댓글 0
浪史雜草 -88  文-  금산 서당기 2

 

公以道篤 敎授經傳 數年之間 文風大仰 非復舊日 天荒島之人 敬之如神明 比公 於潮州之昌黎焉


공은 도에서 천거하여 경전을 수년간 교수하여 글을 배우려는 풍속이 크게 앙양 되어 옛날 거칠었던 것이 다시는 아니었다. 섬사람들은 신명처럼 이를 공경하게 되어 조주의 창려에 비교 되었다.


公有四子 長諱成立號梅軒 次諱元立號竹軒 次諱大立號松軒 季弘立號菊軒 皆篤志好學 孝友之行 肥遯之趣 冠于一島 其后當龍巳之亂 家藏典籍 及所著述 盡入兵火 不傳於世


공은 네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는 휘 성립 호 매국헌이고 다음은 휘 원립 호 죽헌 다음은 휘 대립 호 송헌, 끝은 홍립 호 국헌이다. 모두 돈독한 뜻을 지녀 배우기를 좋아하고 효도 우애를 행하여 은둔의 취미를 살찌워 한 섬에서으뜸이었다. 그 뒤 임진왜란에 집에갈무리한 전적과 저술한 바가 다 병화에 없어져 세상에 전하지 않았다.


然公謂之后 鄕中人士 口耳相傳 至今稱頌 可知公 當時種德之厚也 歲丁酉 公之后孫 龜財合力 建築祠宇 將行春秋享祀之禮 名其祠曰金山祠 其書堂曰金山書堂 以公爲主壁 以四軒爲配 將以丁酉十月二十日 行奉安式 請余記其事 顧余非其人 然其者同宗之誼 亦不敢辭


공이 일컬은 뒤 고장 중 인사들이 입과 귀로 서로 전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칭송함을 알 수 있다. 당시 심은 덕이 두터웠다. 정유년에 공의 후손들이 재물을 모으고 힘을 합해 사우를 건축하여 앞으로 춘추 향사의 예를 행하고 그 사당이름을 금산사라 하고 그 서당은 금산서당이라 하여 공을 주벽으로 하여 네 헌을 배향하기로 하고 정유년(1957) 10월 20일 봉안식을 행하고 나에게 그 사실의 기를 청하여 왔다. 나를 돌아보건대 그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종인의 의가 있고 역시 감히 사양할 수 없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 浪史雜草 -81 文- 枕泉亭記 학전 2019.08.17 8
8 浪史雜草 -82 文- 枕泉亭記 2 학전 2019.08.17 6
7 浪史雜草 -83 文- 枕泉亭記 3 학전 2019.08.17 6
6 浪史雜草 -84 文- 烈婦崔氏傳 학전 2019.08.17 7
5 浪史雜草 -85 文- 烈婦崔氏傳 2 학전 2019.08.17 7
4 浪史雜草 -86 文- 烈婦崔氏傳 3 학전 2019.08.17 7
3 浪史雜草 -87 文- 금산 서당기 학전 2019.08.17 7
» 浪史雜草 -88 文- 금산 서당기 2 학전 2019.08.17 9
1 浪史雜草 -89 文- 금산 서당기 3-終 학전 2019.08.17 1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전통문화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